"다음부터는 샘한테 말씀드려서 방학 좀 줄여달라고 해라."
"됐거든~."
큰 딸 한길이가 긴 방학을 끝내고 간디학교 기숙사로 가는 날입니다.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기쁨의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습니다. 석 달 가까운 방학 내내 게으른 딸과 붙어 지내는 일이 여간 쉽지 않습니다.
"나 검정고시 안 볼 거야"... 마음이 '쿵' 내려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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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디학교 기숙사로 떠나는 큰 딸. |
ⓒ 권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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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처음 방학하고 나서는 종일 잠만 잤습니다. 지가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고 말이죠. 제가 깨울 때 "야, 잠자는 숲속의 슈렉 밥 먹고 다시 자라"고 해도 눈뜨지 않습니다.
겨우 일어난다 싶으면 어느새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출근을 해야 하는 제가 딸의 컴퓨터 사용 시간을 막을 수 없어 하루 4시간만 하도록 하는 시간 관리 프로그램을 깔았습니다.
"엄마, 비번 뭐야?"
"왜?"
"나 지금 논문 편집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야? 그러니까 논문편집부터 했어야지. 알려줄 수 없어."
"엄마는 하루 종일 블로그에 글 쓰면서 왜 우리한테는 시간 통제를 하는 거야?"
"나랑 너랑 같아? 난 일하면서 중간 중간에 짬을 내서 글 쓰는 거고, 넌 충분히 집중해서 쓰면 되잖아.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4시간이 부족해?"
"정말 짱난다."
이런 '짱난다'니, 정말 '짱나는' 건 접니다. 늘어지게 자다 일어나서 고작한다는 말이 컴퓨터 시간이나 늘려 달라고 하니 수행이 부족한 저로서는 속이 끓습니다. 올해 큰딸은 고등학생이 됩니다. 중학교 과정만 있었던 제천 간디학교에 고등 과정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리 같은 학교를 그냥 다닌다지만 그래도 고등학생이 되는데 뭔가 새롭게 마음도 잡고, 부족한 공부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싶었습니다.
"너, 무지 한가하다. 겨울방학 때 고입검정고시 준비한다며?"
"으응. 검고? 나 검고 안 칠 거야."
쿵! 딸이 '검고'를 안 치겠다는 소릴 했을 때 제 가슴에는 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년 추석 때까지만 해도 검정고시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겨울방학에 학원비를 대줄 수 있냐더니 정작 방학이 되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미 저는 딸들에게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기를 주문했으니까요.
그런 제가 왜 검정고시를 보지 않겠다는 딸의 말에 쿵하고 내려앉았을까, 제 밑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들여다볼 문제입니다. 딸이 중1 때 만약 자신이 대학을 가게 되면 등록금을 대주겠냐 물었을 때, 저는 빌려줄 수는 있어도 대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제가 딸이 검정고시를 안 치겠다는 소리에 '쿵'했다는 건 저 역시 이 사회의 학벌이란 구조에 자유롭지 않음을 알아챕니다.
"대학 안 보내려구? 이 엄마, 진짜 간이 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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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살림 프로젝트수업으로 옥상정원을 꾸미는 무지개학교 |
ⓒ 권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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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엄마, 참 용기 있어. 어떻게 하나도 아니고, 애를 둘 다 대안학교에 보낼 생각을 했어?"
"그냥 보낸 건데요. 용기까지 필요한 건 아닌데…."
"아니, 대학은 어떻게 보낼 거야? 그 학교는 대학을 몇 명 보냈대? 서울대 간 애는 있어?"
"대학 진학하는 아이가 별로 없던데요."
"어머. 그럼 한길이 대학 안 보내려구? 이 엄마, 진짜 간이 크네."
옆집 아줌마가 문제라더니 저의 가장 큰 적은 제 지역 서초구 동네 아줌마들입니다. 끊임없이 지금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애를 그렇게 방치하냐, 영어 수준은 어느 정도냐, 'SKY'를 나와도 별 볼 일 없는 세상에 남들 다 나오는 대학도 안 나오면 애가 뭐 먹고 사냐?, 애들이 부모를 나중에 얼마나 원망하겠냐,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빨리 과외 붙여서 입시준비해라. 아니면 외국으로 보내라 등등.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불안한 마음이 없었을까요? 아니요. 있었습니다. 아무리 대안학교라도 어느 정도 수준은 돼야 사회생활을 하는 거 아니야, 좋고 싫고를 떠나서 영어가 기본인데 저렇게 영어를 못해서 어째? 하고 싶을 때 공부한다는 게 말이 쉽지, 공부는 때가 있는 거 아니야? 저도 제 안에서 엄청난 싸움을 합니다.
"엄마는 내가 간디에서 무얼 배웠으면 좋겠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배우는 건 넌데…."
"물론 내가 대안학교에 가겠다고 결정했지만, 엄마, 아빠도 날 대안학교에 보낼 때 어떤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거 아냐. 그걸 듣고 싶어."
큰딸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홈스쿨링을 할지, 간디학교 고등과정으로 진학할지 고민했습니다. 제게도 조언을 구했지만 어떤 선택이든 신중하게 직접 하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다는 건 자신이 책임진다는 의미입니다. 전 아이가 실수를 해서 더디 가더라도 그렇게 가기를 원합니다.
부모는 '자기' 인생만 열심히 살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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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동포 돕기 인사동 거리캠페인에 나온 두 딸 |
ⓒ 권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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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부모가 자식이 조금이라도 실패의 경험을 할까봐 자신들이 대신 결정해 줍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아이의 인생을 가장 빨리 망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직접 선택해서 결정한 것이 잘 안 됐다면 그것을 실패로 볼 것이 아니라 자식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삶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매순간 선택하는 삶이 끊임없이 주어질 텐데 그때마다 부모가 '짠'하고 나타나 대신 해주겠습니까. 또 설령 그렇게 해줄 수 있다 해도 그것이 과연 자식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천년만년 부모가 같이 살아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바다를 비추는 등대일 뿐입니다. 삶이란 배를 항해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딸. 엄마랑 이번에 인사동 거리 캠페인 가자."
"헐? 그게 뭔데?"
"정토회에서 매달 셋째 주 일요일마다 인사동에서 북한동포 돕기 거리모금이 있거든. 엄마랑 거리모금 가자."
"엄마. 나 매달 용돈에서 북한동포 돕잖아. 꼭 그런 거까지 나가서 해야 돼? 쪽팔리게."
"쪽팔리긴.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
"어머니. 혼자 많이 즐거우세요~."
간디학교 고등과정에는 6학년(고3) 1학기에 자신의 진로를 찾는 인턴십 과정이 있습니다. 자신이 사회에 나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인턴십을 하는 것입니다. 그중 한 학생이 동티모르에 봉사를 갔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아이가 언어를 극복했을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생기니 몸짓, 발짓부터 시작해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전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안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싹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구나.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할 수 있는데 나는 무조건 일단 영어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구나.
"얘 벌써 유치원 다녀요?"
"응. 영어 유치원 보냈어."
"몇 살인데요? 너무 빠르지 않아요?"
"세 살. 빠르긴 뭘 빨라. 언어는 지금부터 안 하면 안 돼. 그냥 듣는 연습이라도 해야지."
서초구인 저희 동네 상당수의 부모들은 5살이 되기도 전에 아이를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방학 때는 아이를 데리고 외국 나가고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저희 동네에서 물 위에 뜬 기름과 같습니다. 밤늦게까지 아이를 학원 앞에서 데려오고 데려다주고, 주말에는 또 따로 하는 과외가 있고, 아이는 자기 의견이 없습니다.
부모가 짜 준 스케줄에 몸을 움직이는 인형과 같습니다. 부모가 느긋하게 자식을 기다려 주면 자식은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그래서 법륜스님 말씀대로 부모는 자식의 인생에 간섭할 생각 말고, 자기 인생만 열심히 살면 됩니다.
마음껏 꿈꾸어라, 그리고 내일을 향해 살아가되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이 행복하여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교육. 날마다 변화하며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대안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9년 학부모연수 때 간디학교 양희창 교장선생님 말씀 중)
학벌사회에서 학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대안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느냐는 큰딸의 질문에 이제 답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북한 동포가 하루에 수천명씩 굶어 죽어도 내 부모, 내 자식, 내 형제가 아니라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 굶어죽어도 된다'라고 말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그럼 이제부터는 전혀 두렵지 않을 것 같은가. 글쎄요. 그건 저도 사실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두려운 마음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라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란 항시 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흔들릴 때마다 깨우침을 주시는 스승님들이 계시니 제가 가는 길이 어둡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노신의 <고향>에 나온 글귀를 덧붙입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