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3. 10:28
시사/요즘 세상은
올해 검사 임용에서는 여성 임용률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최근 20~30대 미혼 남녀 87%가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원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남녀 모두 직장 생활을 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현상이다.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직장에서 여자 동료와 일할 기회가 많아지고 여자 상사를 모실 일도 많아졌다.
남성들은 2~3년 군대 경험으로 입사가 여성에 비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나보다 나이 어린 여자 선배나 상사를 모셔야 하는 일이 생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요즘은 여자를 알아야 직장 생활이 편하다.
## 여자 의사가 많은 모 대학병원에 레지던트로 들어간 박씨. 여자 동기가 적은 다른 대학을 나온 데다 갓 군의관을 마치고 나온 후여서 여자들과 어울리는 법을 잘 몰랐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 선배에게 박 씨는 돌이킬 수 없는 '무덤 파기' 인사를 하고 말았다. "요새 얼굴이 동그래졌어요~ 빵 많이 드시던데 얼굴이 빵같아졌어요"라고. 엘리베이터에는 2초간 정적이 흐른 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앞에 서 계시던 교수님이 "그러게 빵을 조심해야 해"라며 쐬기를 박으셨다.
'여자에게 외모를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라'는 기초 중의 기초 불문율도 몰랐던 박씨. 그의 병원 생활이 한동안 가시밭길로 점철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성격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밖에 말을 못한다는 박 씨. 그는 아직도 "예뻐졌다", "살 빠졌다"는 여자들끼리의 인사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여자들의 살벌한 반응을 통해 단련된 박씨는 이제 최소한 외모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은 삼갈 줄 안다.
여성들은 세심한 관심이나 칭찬에 약한 게 사실이다. 반면 남성들은 작은 변화를 잘 알아채지 못하고 무덤덤한 편이다. 애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툼의 원인도 실은 다 여기에 있다. 여자 직장 동료나 상사에게는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관심을 보이거나 칭찬 해 주는 '립서비스'가 직장생활의 팁이 될 수 있다.
## 대형마트 MD로 입사한 김씨. 바로 위에 여자 K과장이 있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박스 나르기와 커피 타기 등 잡일은 다 김씨 몫이었다. 입사하자마자 격무에 시달린 터라 얼굴에는 뾰루지가 나고 입술도 부르텄다. 회식 자리에서 김 씨를 본 상무님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길래?" 하며 말을 건네셨다.
김 씨가 "아 네..."라며 말을 시작하기 무섭게 K과장은 "고생은요. 김XX씨가 어리버리해서 제가 더 힘들다니까요? 호호호" 하며 김 씨의 입을 막았다.
공을 가로채는 건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가 아닌 '인품'의 문제이긴 하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감정적이고 질투가 심하다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김 씨는 "여자 상사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과 부하 직원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면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과 커피라도 마시고 오면 한랭전선에 천둥 번개까지 동반된다"고 말했다. 여자 상사의 예민함은 남자 부하 직원들이 풀기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 모 신문사에 늦은 나이에 입사한 이 씨. 보통 남자들처럼 군대를 다녀온 후 금융회사에서 몇 년 일을 한 후 들어간 터여서 여자 팀장과 나이가 같았다. 여러모로 껄끄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 씨가 들고 있던 영화 전문 잡지를 선배가 우연히 본 뒤, 둘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둘 모두 영화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여자 상사와는 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인 교감이 먼저 이뤄져야 일 하기도 수월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를 등한시하지 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을 갖추는 것이 현명하다.
## 무역회사에 들어간 최씨. 그녀는 여자 팀장님이 잘 챙겨주신 덕에 초반 어려운 시기를 무난히 지낼 수 있었다. 우연찮게 가진 술자리 회식에서 살짝 취기가 돈 최씨는 팀장님에게 이런저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다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라고 말했다.
평소 언니처럼 생각돼온 터라 언니라는 말이 기분 좋은 김에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팀장님은 그 후 예전 보다 냉랭하게 김씨를 대했다. 언니처럼 잘 챙겨준다 해도 직장 상사는 직장 상사. 부하 직원이 그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면 좋았던 사이도 서먹해질 수 있다.
## IT회사 홍보팀에 근무하는 강 씨. 강씨는 여자의 눈물이 직장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곤 한다.
강씨 위의 여자 팀장은 자신이 업무상 저질러 놓은 실수를 임원 앞에서 추궁받을 때 눈물을 흘리기 일쑤다. 싹싹하고 꼼꼼하게 일도 잘 하는 편이어서 팀장자리까지 올라간 그녀는 곤란한 상황에서는 상사나 부하직원 가릴 것 없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려 당황하게 만든다.
강 씨는 "눈물 흘리는 상사한테 대들 수도 없고, 임원들은 눈물 흘리는 부하 직원을 뭐라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돼버리곤 한다"면서 웬만해선 감정을 철두철미하게 숨기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이런 점에서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여성 직원이 많은 패션 회사에 입사한 김씨. 평소 깐깐하기로 소문난 여자 과장은 일이 서툰 김 씨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하길 지시했다. 과장님이 평소 보다 빨리 퇴근하신 어느 날. 김 씨는 패션지에 실릴 화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과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가 전화했을 때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가 집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김 씨는 민망했지만 과장님께 세부 내용을 보고하다가 한바탕 욕만 먹었다. 과장님은 지금 보고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냐며 평소 보다 더 크게 화를 냈다.
김 씨는 "가사와 회사 일을 병행하느라 힘들어했는데 눈치 없이 전화했다가 욕만 얻어먹었다"고 회상했다. 남자와는 또 다른 여자 상사의 고충을 헤아릴 줄 아는 센스가 부족했던 것이다.
변지성 잡코리아 홍보팀장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게 장점이자 단점이면서 남자 직원들이 이해하기 힘든 점이기도 하다"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다른 점에 대한 이해는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최근 지각했다고 메신저로 혼을 낸 여자 상사를 건물 옥상으로 불러내 폭행한 남자 부하 직원이 불구속 입건되는 사건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다면 이런 험악한 상황은 아녀도 일하는 내내 불편함과 어색함으로 업무에도 지장이 생긴다.
사회 구조가 정보화 사회로 진화하면서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는 업무가 줄고 감수성과 창의력, 세심함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졌다. 여성들의 활약이 빛을 발하는 것도 이런 시대의 변화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서로 배려해 주는 여유로움이 결국 효율성 있는 근무 환경으로 이어진다는 게 인사 전문가들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