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홍수아는 좋은 연기자이자 열혈 야구팬 이전에 건전한 시민이었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그러나 겸손하게 밝힐 줄 아는 그는 '진짜'였다(사진=박진환 작가) |
2005년 7월 8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두산과 삼성의 경기에 한 여성 연예인이 시구를 맡았다. 장내 아나운서는 그를 “홍수아”로 소개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19살 신인 여배우의 시구에 집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시구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시구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유명인사의 기념식으로 혹은 연예인들의 홍보 무대로 전락했던 시구(始球)가 홍수아의 등장과 함께 야구팬에게 색다른 재미와 화제를 선사하는 뉴스가 되고, 1회 이전의 ‘0’회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시구의 여왕’ 홍수아(23)를 스포츠춘추가 만났다. 단순한 연예인 시구자가 아니라 한국프로야구에 일대 변혁을 불러온 중요 인물이라는 게 홍수아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다.
실제로 보니까 TV로 봤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우세요.
정말요? (얼굴을 붉히며) 감사합니다. 칭찬해주시니까 기분이 좋은데요(웃음).
오늘(6월 30일) 목동구장에서 벌어진 두산과 히어로즈의 경기는 동점과 역전이 숨 가쁘게 전개되는 접전이었습니다. 경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솔직히 홍수아 씨가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경기를 관전해 무척 놀랐어요.
(이상할 게 없다는 표정으로) 야구팬으로서 당연한 거 아니에요?
시구를 마치고도 좀체 자리를 뜨지 않는 시구자라고 들었어요. 시구자 대부분이 짧으면 1회 길면 6회까지 관전하다가 자리를 뜨게 마련입니다. 평소에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관전하나요?
당연하지요. 시구하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야구보다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전 그냥 야구장에서 야구 보는 게 즐겁고 행복해요. (활짝 웃으며) 시구도 야구 보는 재미의 일부분일 뿐이에요. 오늘 연장까지 갔어도 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웃음).
‘굴욕포즈’에서 ‘개념 시구’로
상투적인 질문부터 할게요. 야구는 언제부터 좋아했나요?
아빠가 야구를 무척 좋아하세요. 덕분에 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TV로 야구를 보면서 좋아하게 됐어요. 학교에서 발야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야구 규칙을 익혔고요. 그러다 시구하고 나서 야구에 ‘푹’ 빠졌지 뭐에요(웃음).
첫 시구가 2005년 7월 8일 잠실 두산과 삼성전이었지요?
네. 그즈음 두산에서 “(홍수아 씨) 시구를 부탁한다”는 연락이 소속사로 왔어요. 제 의사를 묻기에 두말하지 않고 “하겠다”고 했어요.
시구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던 2005년 홍수아의 1차 시구 장면. 한국프로야구 시구는 홍수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사진=두산) |
과거 여성 연예인들의 시구를 보면 ‘투구’보단 ‘패션’과 ‘우아한 자세’에 더 신경을 쓴 게 사실이에요. 포수 미트까지 공을 던지면 혹여 “힘이 세다”는 말을 들을까 일부러 천천히 던진 여성 연예인 시구자도 있었다고 해요.
야구 중계를 볼 때마다 다른 여성 연예인분들 시구하시는 걸 유심히 봤어요. 예쁜 차림으로 하이힐을 신고 시구하시는 분들이 뜻밖에 많더라고요. 하지만,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시구할 때 7부 바지에 운동화를 신었어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야구팬들이 절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운동화는 저도 살짝 놀란 부분이에요. 더 정직하게 말하면 홍수아 씨가 야구를 존중하는 것 같아 무척 고마웠습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하이힐을 신고 마운드를 밟는 건 마운드에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투수에겐 마운드가 성전 같은 곳이잖아요. 사실 그때 스타일리스트분이 하이힐을 준비하셨었어요.
복장도 복장이지만 그때 화제가 된 건 투구폼과 구속이었어요.
시구하기 며칠 전부터 연습을 꾸준히 했어요. 매니저분과 캐치볼을 하면서 투구폼을 배우고 사무실 담벼락에 혼자 야구공을 던지면서 폼을 가다듬었어요. 시구 당일에도 구장 한편에서 열심히 공을 던지며 몸을 풀었어요. 덕분에 투구폼도 다른 시구자분들과 다르고 공도 빨리 던질 수 있었어요.
시구에 특별히 신경 쓴 이유라도 있나요?
전 한번 스케줄이 잡히면 그냥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거든요. ‘한번 할 때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자’ 이게 제 지론이에요(웃음).
시구를 지켜본 대중의 반응은 놀라움 일색이었습니다. 다들 ‘아, 저런 시구도 있구나’ 했지요. 하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어요.
맞아요. 당시 대부분 기사의 제목이 ‘홍수아의 굴욕포즈’였어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저도 여자인지라, 창피하기도 하고. ‘사진이 왜 이렇게 나왔을까’ 속이 상하기도 했어요. 사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표정이 많이 일그러져 있었거든요. 하지만.
하지만?
(표정이 환해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분이 제 진심을 알아주셨어요. ‘얘는 최소한 운동화는 신을 줄 안다.’ ‘적어도 예쁜 척하고 시구하진 않는다.’ ‘홍수아는 뭐든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생각들을 하시게 됐나 봐요. 그때부터 절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눈에 띄게 늘었어요.
홍수아는 곰처럼, 베어스처럼 묵묵히 제 갈길을 가는 연기자다(사진=박진환 작가) |
이후 시구에서도 표정은 항상 일그러져 있었어요. 사실 모든 투수가 투구할 땐 표정이 일그러진답니다.
제 표정이 일그러지면 질수록 더 좋은 시구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혼잣말을 하듯) 표정이 일그러지건 그렇지 않건, 어차피 그 얼굴도 제 얼굴이에요. 전 제가 온 힘을 다할 때의 표정이 가장 좋아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홍수아 씨 시구가 야구계의 최대 화제로 떠올랐어요.
그즈음 야구팬들이 제 시구 사진으로 패러디를 많이 하셨어요. '깜짝! 사상 최고 광속구 투수 탄생. 홍수아 시속 156km'이라는 패러디를 비롯해 정말 많은 패러디물이 나왔어요. 그때 처음으로 많은 야구팬이 절 ‘홍드로’라고 부르신다는 걸 알았어요.
홍드로라, 저도 처음엔 뭔가 했어요.
한번은 기사 댓글을 보는데 어느 분이 ‘홍드로, 홍드로’하고 쓰신 거예요. 속으로 ‘홍드로’가 뭐지 하고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미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페드로 마르티네스란 분이 계시더라고요. (손뼉을 치며) 정말 위대한 투수시지 뭐에요. 알고 보니까 제 투구폼이 그분과 비슷하다고 그런 별명을 지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홍드로란 별명 어떠세요?
정말 좋아요. 다른 분들도 ‘홍드로, 홍드로’하고 절 부르면 더 친근하게 느껴지시나 봐요. 간혹 누가 뒤에서 ‘홍드로’하고 불러주시면 울컥할 때도 있어요. 감사해서, 정말 감사해서(웃음).
두산에게 ‘The End'는 없다
두 번째 시구는 2007년 한화와 두산의 플레이오프 7차전이었습니다.
시구 제의가 왔을 때 ‘이번에도 온 힘을 다해 노력하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 두산 프런트 분께 “정말 열심히 하고 싶어서 그런데 글러브와 공을 좀 구할 수 있을까요”하고 부탁드렸어요. 그때부터 시간만 나면 학교 운동장이나 한강 둔치를 찾아 캐치볼을 했어요. 첫 번째 시구 때와는 달리 두산 상의 유니폼을 입기도 했지요.
저만의 느낌일까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구는 감동의 농도가 달랐어요. 후자가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정확한 이유는 대기 어렵지만.
첫 번째 시구가 끝난 다음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굴욕포즈란 놀림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했었어요. 그런 와중에 제가 두 번째 시구에 나섰으니 그 프로그램을 봤던 분들이 ‘어, 상처받았다더니 또 시구하네’하고 놀라지 않으셨겠어요. (다부진 표정으로) 그분들께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그때 받은 건 상처가 아니라 기쁨이었다는 걸. ‘쟤는 항상 열심히 한다’는 걸. 그래서 더 열심히 던졌고, 그걸 보고 감동을 하신 것 같아요.
2007년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한결 성숙한 투구를 선보인 홍수아(사진=두산) |
세 번째 시구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이었어요. 이번엔 유니폼 상·하의를 완벽하게 입고 나왔어요.
그 경기로 한국시리즈가 끝났으니 제가 한국시리즈 마지막을 장식했다고 봐도 되겠지요(웃음) 두산이 그때 우승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올 시즌 두산은 어떤가요? 한국시리즈 우승이 가능할 것 같은가요?
네, 꼭 우승할 거예요. 두산 경기는 정말 9회 말까지 봐야 해요. 팀 대부분이 경기 초반 점수 차가 많이 나면 포기하고 말잖아요. 하지만, 두산은 달라요. 9명의 선수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플레이에 ‘The End'는 없다니까요(웃음).
두산 선수 가운데 특별히 친한 선수라도 있나요.
그렇게 친한 선수는 없어요. 임태훈, 김현수 선수 정도. 지금은 롯데에서 뛰시는 홍성흔 선수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분이 저와 성도 같고 시구할 때마다 공을 받아주셨거든요.
그런데 스캔들은 엉뚱하게 고영민과 났어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셨던 국가대표 선수단이 인천공항으로 귀국했을 때에요. 그때 환영 꽃다발을 들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입국장 게이트가 열리고 고영민 선수가 나오시더라고요. 그래서 꽃다발을 드린 것뿐이었는데 알고 보니까 LG 봉중근 선수가 가장 먼저 나오셨다고 해요. 그때 인기도 봉중근 선수가 무척 좋았고요. 주변 분들이 보시기에 봉중근 선수한테 꽃다발을 주지 않고 고영민 선수에게 준 게 이상하셨나 봐요. 그래서 그런 소문이 났던 것 같아요(웃음).
유독 두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시구 전에도 두산에 호감이 있었어요. 시구 뒤에 정말 좋아졌죠. 지금은 비록 명예선수지만, 제 구단이란 생각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한번은 어떤 방송사에서 제게 인터뷰를 요청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말씀 드렸는지 아세요.
?
‘구단의 허락이 있어야 인터뷰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지 뭐에요(웃음). 그렇다고 제가 두산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8개 구단 모든 팀을 응원하고 좋아해요. 그 가운데 두산을 조금 더 좋아할 뿐이랍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 유니폼을 맞춰 입고 시구에 임한 홍수아(사진=두산) |
'진짜 연기자' 홍수아
주목받는 젊은 연기자이자 야구팬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명예투수예요. 야구와 연기의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겐 연기와 야구가 똑같은 존재에요. 제가 무척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대상이자 정말 열심히 하고 싶은 분야에요. 좋은 연기자가 되려면 아직 올라가야 할 계단이 많다는 걸 잘 알아요. 연기자로서의 홍수아는 부족한 것투성이에요. 하지만, 급하게 오르지 않으려고 해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스윙연습을 해 마침내 한국 최고의 타자가 된 김현수 선수처럼 저도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면서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려고 해요.
명예투수 홍수아의 장점은 잘 알고 있어요. 빼어난 투구폼과 입이 쫙 벌어질 만큼의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투수지요. 이번엔 연기자 홍수아의 장점을 듣고 싶은데요.
글쎄요. (쑥스러워하며) 제 입으로 말하는 게…좀….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남의 인생을 표현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요. 한 작가가 그러더군요. “홍수아의 연기는 진짜”라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제 연기의 장점은…진심으로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진심으로 한다’는 정확한 뜻을 알고 싶어요.
가슴으로 연기한다는 거죠.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는데요. 지난해 주말드라마 ‘내 사랑 금지옥엽’에 한창 출연하고 있을 때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시구를 했어요. 그런데 시구를 마치고 무슨 용기가 났는지 관중석을 향해 연방 손 키스를 날렸지 뭐에요. 제 스스로 손 키스를 날리고 나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그때 ‘내 사랑 금지옥엽’의 배역이 철없고 명랑한 역할의 ‘백재라’였거든요.
백재라?
경기가 끝나고 집에서 시구 동영상을 다시 보는데 손 키스를 날리는 행동은 드라마에서 ‘백재라’가 보이던 행동이었어요. 그러니까 손 키스를 날린 건 ‘홍드로’가 아니라 ‘백재라’였던 거예요(웃음). 평소 연기에 몰입하면 그 작품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역할에서 헤어나지 못하곤 해요. 예전 ‘하늘만큼 땅만큼’이란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 배역이 유년 시절 왕따 당한 경험이 있는, 슬픔이 많은 아이였어요. 그 작품 끝나고 우울증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다른 연기자보다 제가 더 배역에 몰입하는 경향이 심한 것 같아요.
여담이에요. 일전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가 된 바 있어요. ‘야구’하면 떠오르는 여성 연예인이 홍수아 씨인데요. 이름이 없더군요. 저는 당연히 캐스팅이 될 줄 알았거든요.
(겸손한 목소리로) 절 모르는 분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천만에요.
그럼 다행이에요. 요즘 야구영화를 많이 제작하시나 봐요. 영화 관계자분들이 절 보면 꼭 그러세요. “홍수아 씨가 캐스팅 1순위입니다”라고. ‘홍드로’를 예쁘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구속과 제구를 동시에 갖춘 '시구의 여왕' 홍드로
재능있는 연기자 홍수아는 진심을 다한 연기로 정평이 나 있다(사진=KBS) |
‘홍드로’가 연기자 홍수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양할 듯해요. 한 손이 다른 손을 씻어주듯 ‘윈-윈’효과만 내는 건 아닐 듯싶어요.
저를 연기자가 아니라 야구로 먼저 아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한번은 사인해 드리고 있는데 팬분께서 “홍수아 씨, 공 정말 잘 던지세요. 진짜 홍드로 최고예요”하시는 거예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고 감사한 거 있죠. 그런데 그분이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혹시
(눈치를 챈 듯) 맞아요. “그런데 드라마는 안 하세요?”하시지 뭐에요. 그때 한창 드라마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실망이 컸겠어요.
전혀요. 되레 속으로 ‘아, 내가 연기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홍드로란 별명이 기쁠 때는 언제에요?
잠실구장에서 유니폼 뒤에 ‘홍드로’란 이름을 붙이고 다니시는 분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제 등번호인 1번도 적혀 있더라고요. 그땐 정말 눈물이 나는 줄 알았어요. 고맙고 감사해서요.
등번호가 어째서 1번이에요?
원래는 이재우 선수 등번호에요. 제가 두산 명예선발 투수 1호라고 구단에서 ‘1’번을 달아주신 것 같아요. 처음엔 ‘내가 명예선발 1호면 나중에 2호, 3호가 생기겠네’ 했거든요. 그런데 구단에서 “2호는 안 뽑는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요즘도 투구 연습은 꾸준히 한다고 들었어요.
차에 글러브와 공이 있어요. 보여 드릴까요? 지금도 촬영하기 전 시간만 있으면 캐치볼 해요. ‘내 사랑 금지옥엽’ 촬영할 때는 김성수 오빠랑 캐치볼 하기도 했어요.
연예인 야구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을 법도 한데요.
연예인 야구단 여기저기서 서로 오라고 하시죠. “유니폼 다 만들어놨으니 몸만 오라”고 하시는 곳도 있고요(웃음). 하지만, 제 구단은 오직 하나. 두산뿐이랍니다. 두산에서 이적을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팀에서 뛸 생각이 없어요(웃음).
혹시 구속을 재본 적이 있으세요? 들리는 말에는 웬만한 사회인야구 투수보다 빠르다고 하던데.
평균구속이 시속 80km 정도에요. 요즘은 조금 더 나올 것 같고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구속이 아니라 제구랍니다. 예전보다 제구가 많이 좋아졌어요.
제구라.
요즘 시구 기사 보면 ‘홍드로의 아성을 깨고 싶다’는 시구자분들의 다짐이 많은데요. 전 그분들 시구가 끝나면 어떻게든 인터넷 검색을 해서 다 보거든요. 보면.
보면?
원바운드로 던지면서 제 아성을 깨시겠다니(웃음). 농담이고요. 사실 저 혼자만의 ‘홍드로’가 아니에요. 저를 예쁘게 포장해주시고 다듬어주신 두산 프런트 분들의 힘이 지금의 ‘홍드로’를 만들었다는 생각이에요. 늘 고마운 마음이에요.
홍수아의 꿈, "1이닝이라도 던지고 싶다."
23살의 젊은 여성 홍수아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연기와 인생을 한 단계 성숙시키고자 한다. 인터뷰 내내 몰려드는 팬들의 사인 요구에 싫은 기색없이 환한 미소로 응대한 그는 '시구의 여왕' 이전에 '진정한 프로'이자 '선량한 이'였다. 그것이 우리가 홍수아를 '진짜'라고 부르는 이유다(사진=박진환 작가) |
당신의 꿈을 듣고 싶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언젠간 꼭 좋은 역할을 맡고 싶어요.
좋은 역할은 어떤 역할인가요?
주연과 조연을 떠나 극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전체적은 극의 흐름을 이끄는 역할이 아닐까요. 악역도 상관없어요. 그리고 정말 꿈은….
연기대상이나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싶은 건가요?
아니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내 자신감이 넘친 말투로) 시구 말고 등판을 하고 싶어요.
등판?
실제 경기에 등판해보고 싶어요. ‘딱’ 1이닝만 던졌으면 좋겠어요. (간절한 표정으로) 정말 잘 막을 수 있는데.
당신이 좋은 투수인 건 알아요. 하지만.
(말을 막으며) 이래도 저요. 포크볼, 스플리터, 슬라이더, 투심패스트볼 등 못 던지는 공이 없어요. 일본에선 너클볼 던지는 여자선수가 프로야구에 입단했다고 하던데요. 아, 정말 부러운 거 있죠. 참!
네?
이것만은 꼭 밝혀둘 게 있어요.
무슨?
제가 돈을 벌거나 절 홍보하려고 시구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시구한다고 돈 받는 건 전혀 없어요. 응원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좋아하는 야구라, 구장을 찾는 것뿐이에요. 오해의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분들께서 제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진정을 거의 모든 이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어요.
전 아직 어려서 경험해야 할 게 정말 많아요.
야구나 인생이나 와인과 다를 게 없어요.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일수록 성숙해지게 마련이거든요. 가장 경험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요.
음, 연애에요. 사랑하는 이와 밥을 먹고, 길을 걷고, 대화를 나눠야 그 감정이 연기에서도 자연스럽게 표출되거든요. 하지만,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서 그런지 정신없이 달려오기만 했어요. 더욱 성숙한 연기를 위해서, 제 인생의 성장을 위해서 지금이야말로 연애할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솔로는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도 그럴 게 솔로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이나 생일 때 케이크가 팔리지 않거든요. 특히나 생일에 혼자 있다거나 일로 밤을 지새운다면 그것보다 불행한 시간도 없다는 생각이에요.
저…실은 오늘이 생일이에요.
네? 정말이세요?
6월 30일. 오늘이에요.
아니 그럼 생일에 야구 경기보고 지금 인터뷰하시는 거예요?
생일엔 원래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아닌가요(웃음). 오늘 두산이 이겼잖아요. 그것보다 큰 선물이 있나요. 그리고 인터뷰 약속이 생일 파티 약속 이전에 잡혔던 거라, 깨고 싶지 않았어요. 야구 좋아하는 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거…행복하지 않나요.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