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21. 10:24
취미/운동
바티스투타 (피오렌티나) 11경기 연속골…동상 세워져
아르헨티나 출신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40)는 이탈리아에서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로 불린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그는 1991년 보카 주니어스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부터 13골을 넣으며 피렌체 시민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피오렌티나는 바티스투타의 꾸준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93년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바티스투타의 이적을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팀에 남아 의리를 지켰다. 그리고 피오렌티나를 다시 세리에A로 승격시킨 94~95시즌에는 개막전 이후 11경기 연속 골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26골로 당당히 득점왕에 올랐다.
바티스투타를 향한 피렌체 시민들의 사랑은 더욱 뜨거워졌다. 피오렌티나 경기장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러나 그는 2000년 피오렌티나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AS로마는 바티스투타의 영입을 위해 3000만 유로(약 500억 원)의 이적료를 제시했다. 재정난을 겪던 피오렌티나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바티스투타의 유니폼이 바뀌었다고 피렌체를 향한 마음까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이적 첫 해 그는 피오렌티나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로마의 모든 선수가 환호하던 순간 골을 터뜨린 바티스투타는 오히려 눈물을 보였다. 그는 경기 후 “승리해서 기쁘긴 하지만 피오렌티나를 무너뜨린 사람이 나라는 게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네드베트(유벤투스) ‘두개의 심장’사나이…지성 롤 모델
2006년 5월. 이탈리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탈리아 세리에A 최다 우승기록(27회)을 갖고 있던 유벤투스와 축구협회, 심판들이 연루된 승부조작 스캔들이 발각돼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유벤투스는 2006~07시즌을 ‘승점-9점’의 핸디캡까지 안은 채 세리에B에서 시작하게 됐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물론 이브라히모비치·비에이라·튀랑 등 유벤투스의 주축들은 새로운 팀을 찾아 떠났다. 그러나 꿋꿋이 의리를 지킨 이들도 있었다.
파벨 네드베드(37)는 첼시와 토트넘 등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불구하고 잔류를 선택했다. 그는 “유벤투스와 함께할 수 있다면 세리에A든 세리에B든 상관없다”고 말해 팬들을 감동시켰다.
다행히 유벤투스의 악몽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벤투스는 세리에B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2007~08시즌 세리에A 승격에 성공했고 그 중심에는 네드베드가 있었다.
그는 올 시즌에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3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나이. 엄청난 활동량으로 종종 박지성의 롤 모델로 언급되기도 하는 그는 이번시즌을 마친 뒤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테베스(웨스트햄) 마지막 2경기서 3골 ‘구세주’
카를로스 테베스(25·맨유)의 분쟁 사례는 프로 구단이 리그 잔류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6년 코린티안스(브라질)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웨스트햄으로 입성한 테베스는 시즌 막판 웨스트햄의 영웅이 된다.
시즌 초반 기대 이하였지만 강등 여부가 결정되는 리그 마지막 2경기에서 3골을 뽑아내 웨스트햄을 구해냈다. 맨유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지금도 웨스트햄 원정 경기에 나서면 웨스트햄 팬들의 박수를 받는 이유다.
웨스트햄이 기사회생하는 사이 16위였던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위건과의 최종전에서 패해 18위로 내려앉아 강등되고 말았다. 사실 테베스는 계약당시 규정위반으로 소문이 자자한 선수였다. 프리미어리그 규정상 당사자인 구단 이외의 제3자 개입을 금지한다. 구단 이외의 선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셰필드는 이 사실을 공론화하며 웨스트햄에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불법선수로 잔류에 성공한 웨스트햄 때문에 강등을 당해 손해가 막심하다'는 내용이었다. 2년간 끌어온 양측의 분쟁은 3월 웨스트햄이 향후 5년간 2000만 파운드(약 384억 원)를 배상하기로 하고 타협을 봤다. 하지만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에 남아 있는 웨스트햄은 테베스로 인해 배상금과 비교할 수 없는 이득을 본 셈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연간 중계권료 수익만 약 400억 원에 이른다.
이정찬 인턴기자
아르헨티나 출신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40)는 이탈리아에서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로 불린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그는 1991년 보카 주니어스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부터 13골을 넣으며 피렌체 시민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피오렌티나는 바티스투타의 꾸준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93년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바티스투타의 이적을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팀에 남아 의리를 지켰다. 그리고 피오렌티나를 다시 세리에A로 승격시킨 94~95시즌에는 개막전 이후 11경기 연속 골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26골로 당당히 득점왕에 올랐다.
바티스투타를 향한 피렌체 시민들의 사랑은 더욱 뜨거워졌다. 피오렌티나 경기장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러나 그는 2000년 피오렌티나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AS로마는 바티스투타의 영입을 위해 3000만 유로(약 500억 원)의 이적료를 제시했다. 재정난을 겪던 피오렌티나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바티스투타의 유니폼이 바뀌었다고 피렌체를 향한 마음까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이적 첫 해 그는 피오렌티나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로마의 모든 선수가 환호하던 순간 골을 터뜨린 바티스투타는 오히려 눈물을 보였다. 그는 경기 후 “승리해서 기쁘긴 하지만 피오렌티나를 무너뜨린 사람이 나라는 게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네드베트(유벤투스) ‘두개의 심장’사나이…지성 롤 모델
2006년 5월. 이탈리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탈리아 세리에A 최다 우승기록(27회)을 갖고 있던 유벤투스와 축구협회, 심판들이 연루된 승부조작 스캔들이 발각돼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유벤투스는 2006~07시즌을 ‘승점-9점’의 핸디캡까지 안은 채 세리에B에서 시작하게 됐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물론 이브라히모비치·비에이라·튀랑 등 유벤투스의 주축들은 새로운 팀을 찾아 떠났다. 그러나 꿋꿋이 의리를 지킨 이들도 있었다.
파벨 네드베드(37)는 첼시와 토트넘 등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불구하고 잔류를 선택했다. 그는 “유벤투스와 함께할 수 있다면 세리에A든 세리에B든 상관없다”고 말해 팬들을 감동시켰다.
다행히 유벤투스의 악몽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벤투스는 세리에B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2007~08시즌 세리에A 승격에 성공했고 그 중심에는 네드베드가 있었다.
그는 올 시즌에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3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나이. 엄청난 활동량으로 종종 박지성의 롤 모델로 언급되기도 하는 그는 이번시즌을 마친 뒤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테베스(웨스트햄) 마지막 2경기서 3골 ‘구세주’
카를로스 테베스(25·맨유)의 분쟁 사례는 프로 구단이 리그 잔류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6년 코린티안스(브라질)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웨스트햄으로 입성한 테베스는 시즌 막판 웨스트햄의 영웅이 된다.
시즌 초반 기대 이하였지만 강등 여부가 결정되는 리그 마지막 2경기에서 3골을 뽑아내 웨스트햄을 구해냈다. 맨유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지금도 웨스트햄 원정 경기에 나서면 웨스트햄 팬들의 박수를 받는 이유다.
웨스트햄이 기사회생하는 사이 16위였던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위건과의 최종전에서 패해 18위로 내려앉아 강등되고 말았다. 사실 테베스는 계약당시 규정위반으로 소문이 자자한 선수였다. 프리미어리그 규정상 당사자인 구단 이외의 제3자 개입을 금지한다. 구단 이외의 선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셰필드는 이 사실을 공론화하며 웨스트햄에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불법선수로 잔류에 성공한 웨스트햄 때문에 강등을 당해 손해가 막심하다'는 내용이었다. 2년간 끌어온 양측의 분쟁은 3월 웨스트햄이 향후 5년간 2000만 파운드(약 384억 원)를 배상하기로 하고 타협을 봤다. 하지만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에 남아 있는 웨스트햄은 테베스로 인해 배상금과 비교할 수 없는 이득을 본 셈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연간 중계권료 수익만 약 400억 원에 이른다.
이정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