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좋은느낌/원철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모아보렵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10. 1. 8. 17:46 카테고리 없음
    •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출근을 하지 않는 프리랜서라 이른 시간에 기상한 것도 아니고 TV가 없기 때문에 아침부터 
      뉴스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방과 거실 2중 창문은 모두 반투명이고 더욱이 방의 창문은 
      에어컨 공사 때문에 열리지 않는 고정형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현관문을 나서지 않으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그래서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작은 창을 살짝 열어 보고는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마다 작은 방범창 때문에 진정 감옥에 갇힌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고
      는 한다.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오래된 주택의 구조적 특성이다. 그러나 현관문을 나서지 않으
      면 세상과 단절된 집이지만 그 문만 열면 10미터 앞에 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펼쳐진 집이
      기도 하다. 한마디로 서울 아닌 서울이나 마찬가지다.
       
      아, 근데 이게 웬일인가. 밖에는 엄청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욕실을 뛰쳐나와 현관문을 열어
      젖혔다. 골목이며 자동차 지붕이며 산의 나무까지 온통 하얀색이었다. 그날 서울에 내린 눈은 
      ‘100년만의 폭설’이었다. 눈을 치우고 돌아서면 뒤에 또 하나 가득 눈이 쌓여 있을 정도로 쉬지 
      않고 내렸다.
      본격적인 재설작업은 느지막한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와 집 앞의 
      눈을 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눈의 양이 너무 많아 처치곤란이었다. 결국 차량이 주차된 
      방향으로 눈을 몰아넣었다. 다음날 골목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말끔하게 눈이 치워진 골목도 
      있었지만 재설작업이 되지 않은 골목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빙판길로 변해버렸다. 그 골목의 
      모습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더 난감(?)했던 것은 
      자신의 차량만 빠져나가겠다고 차량 주변에 쌓여있던 눈을 재설작업이 끝난 골목 한복판으로 
      밀어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도 차량 주변의 눈을 어찌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노력
      했다면 구차구획선쪽으로 얼마든지 눈을 치울 수 있었을 것이다.
       
      100년만의 폭설이 내린 후 그런 생각을 했다. 서울의 ‘골목’은 이제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회색분자일지도 모른다. 점점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고 있는 서울에서 ‘골목’은 
      낯선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몇 십 년 후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서울에 아직 남은 골목은 더 이상 이웃사촌과 오순도순 정을 나무며 살던 골목이 
      아니다. 모양은 골목이지만 삶의 형태는 콘크리트로 단절된 아파트 단지를 이미 닮아버렸다. 
      그래서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눈 때문에 거북이걸음을 하던 차량들은 불편했겠지만 그 모습처럼 
      삶의 형태도  더디 변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글과 사진 박동식>
    posted by 좋은느낌/원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