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 총회(UNFCCC COP15, 이하 COP15)'가 12월 7일부터 18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기간동안 녹색연합과 공동으로 '코펜하겐은 지금'이라는 현장 기획 기사를 출고했습니다. 이 기사는 그 마지막회입니다. 그간 코펜하겐 회의에 관심을 가져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편집자말>
▲ 코펜하겐 공항에 설치한 그린피스의 광고로 각국 정상들의 '사과'를 담고 있다.
ⓒ 그린피스
그린피스의 예언이 적중한 것일까? 코펜하겐 공항에 걸린 세계정상들의 사과(I'm Sorry) 광고가 어찌나 실감이 나는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인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15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는 실패로 끝났다. 무거운 마음으로 공항에 갔더니 유럽전역에 불어 닥친 폭설과 한파로 비행기가 결항되었다.
"깨어진 희망의 도시 코펜하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숙소에 짐을 다시 내려놓고, 코펜하겐 합의문(Copenhagen Accord)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18일 밤늦게 완성된 합의문은 12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 이내'에서 안정화시키며, 지구의 허파인 숲을 보전하는데 힘을 모으고, 선진국이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는다는 것이다. 2주간의 열띤 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합의문이지만 법적 구속력은 갖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 회의에서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의 탄생을 기대했다. 그렇기에 코펜하겐 합의문의 내용은 들여다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미미한 결과이며, 반쪽의 '성공'이 아니라 완전한 '실패'에 가깝다. 겨우 이 정도의 합의문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 세계에서 110여명의 정상이 야단법석을 떨며 참가하고, 그 때문에 UN은 회의장을 걸어 잠그고 NGO들의 출입을 봉쇄시켰나 싶다.
코펜하겐 회의를 앞두고 COP15에 대한 관전 포인트 10가지를 쓴 적이 있다. 여기에서 그 결과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350 위기에 처한 나라들은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350ppm에서 안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350.org
첫째,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이기로 전 세계가 합의할 것인가?
IPCC 4차 보고서의 권고를 받아들여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한다는 데만 동의했다. 이를 위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몇 ppm에서 안정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태평양군소도시국가(AOSIS), 아프리카 국가 등을 포함해 92여국이 1.5도 내에서 안정화되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둘째, 온실가스 감축량을 어떻게 얼마나 나눌지?
이번 회의에서는 감축량에 대한 어떤 결과도 도출되지 않았다. 선진국들은 2010년 1월 31일까지 교토의정서에서 합의한 것보다 높은 중기 감축목표(2020년)를 결정해서 기후변화협약사무국에 알려줘야 한다.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이 적어도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40%를 줄일 것을 요구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17%를 줄이겠다고 연설을 했다. EU는 1990년 대비 20~30%를, 일본은 25%, 러시아는 15~25% 감축안을 고려하고 있다. 결국 개도국들의 기대에 못 미친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량 제시가 이번 회의 실패요인 중의 하나이다.
셋째, 개도국의 대표주자 중국과 인도가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할 것인가?
코펜하겐협정문 전반에는 선진국의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언급하고 있고, 개도국들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로 했다. 내년 1월 말까지 감축 방안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2년에 한 차례씩 감축 실행 경과에 대해 자체적으로 측정, 보고,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결론은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은 하되 자율적으로 하는 것으로.
넷째, 지금 당장 기후변화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나라들은 누가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도와줄 것인가?
선진국은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긴급하게 2010-2012년까지 300억 달러를 지원하며,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지원한다. 이를 코펜하겐녹색기후기금(Copenhagen Green Climate Fund)로 조성해 아프리카와 태평양 군소국가와 같이 가장 기후변화에 취약한 그룹부터 지원한다. 개도국을 위한 지원 금액이 늘어나긴 했으나, 누가 어떻게 돈을 마련하고 분배할지를 결정하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12월 12일을 기대하시라
NGO 랠리는 대단했다. 사상 최대 6만이 참가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 세계 NGO들의 집회가 110개국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코펜하겐 전역에 "기후를 변화시키지 말고 시스템을 변화시켜라(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의가 끝나고 전 세계 NGO들은 실망과 분노를 담은 성명서를 쏟아내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세계시민행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여섯째, 한국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은 실패한 회의의 수혜자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에 책임지지 않는 선진 개도국으로서 의무감축에 편입되지 않았다. 기후변화 책임 회피를 위한 '바닥을 향한 경주'에서 한국이 제안한 개도국들의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식은 일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일곱째, 한국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 반응?
국제무대에서 모두가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혼자 '4대강'을 이야기하는 한국정부였다. 기자들의 관심사항은 온실가스 감축이지 한국의 4대강사업이 아니었다. 심명필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장'이 직접 진행한 기자회견장은 기자들의 참석 부족으로 파리만 날리고 예산만 낭비했다. 벨라센터에 설치된 4대강 홍보부스는 '동아시아 기후변화 파트너십' 기금으로 운영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개도국 지원금으로 쓰겠다고 홍보한 돈을 녹색성장 홍보에 썼으니.
한국 언론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18일, 이명박 대통령은 리히텐슈타인, 멕시코, 모나코, 스위스 그리고 한국으로 구성된 환경건전성그룹(EIG)을 대표해서 발표했다. 여기에 한국 언론과 정부는 '앵콜 요청', '최초 두 번 발언', '유엔 요청' 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발언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EIG 그룹을 대표해 발표했을 뿐이고, 두 번 발언한 국가정상은 이명박 대통령만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한국의 '녹색성장'을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4대강 사업을 둘러싸고 자연은 파괴되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다.
여덟째,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으로 탄소거래, CCS, 원자력에 대해 어떤 결정이 내려질까?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탄소시장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방안에 대해서는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국내에서 기후변화와 시장 매커니즘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력을 청정개발체제로 인정하자는 목소리는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원자력문화재단 지원금으로 참석한 일부 경제지 기자들은 또 '원자력 르네상스'를 홍보하는 기사를 써대기도 했다.
이번 회의의 성과는 산림부문에 대한 합의가 유일하다. REDD는 산림을 벌채하지 않고, 보호하면 보상을 해주는 정책이다. 이번에는 REDD+까지 포함해, 플랜테이션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이 결과에 대해 환경단체와 원주민들은 산림의 상품화와 플랜테이션으로 인한 환경악화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REDD 형태의 프로젝트는 이미 지역사회와 원주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 정상회의에서 발언하는 차베스 베네수엘라대통령 "오바마, 정말 이회의가 중요하다면 끝까지 자리 지켰어야"
ⓒ 이유진
아홉째, 코펜하겐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해법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해법을 찾지 못했다. 희망은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일각에선 코펜하겐 합의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오바마의 협상력 덕분이라고 한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의 면담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합의문을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정상회담 회의장에서는 베네주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연설이 빛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회의에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한다. 그렇게 중요한 회의라면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지 자기 말만 하고 저기 쪽문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가?" "미국이 파산직전의 은행에 쏟아 부은 수천억 달러에 비하면, 연간 1000억 달러를 개도국에 지원하는 것에 그저 '동의'한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농담 수준이다"라고 비난했다.
열 번째, 불행히도 코펜하겐에서 정치적 의지만을 답은 선언문 수준에서 그친다면 세부 사항에 대한 논의는 어디서 어떻게, 또 언제까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코펜하겐 합의문에 대한 세부 논의는 2015년까지 계속된다. 2010년 16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열리는 멕시코에서 무엇을 어떻게 논의하겠다는 내용은 언급조차 없다.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협약의 향방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 이들이 지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기후정의에 한 목소리를"
ⓒ 이유진
예상치 않게 코펜하겐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류는 아직 아프리카로 대표되는 가난한 나라에서 기근으로 수만명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당장 자국의 존립이 달려있지도 않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이런 실망스러운 답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섬나라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변화에 있어서도 최초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질 것이며 국제사회가 이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지구공동체는 최악의 상황을 향해 달리게 된다.
"기후정의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것!"
이번회의가 가져다 준 교훈이며, 이를 위해 UN이나 국가 차원이 아닌 전세계 시민들의 직접 행동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애초에 역사를 바꿔왔던 것은 안락한 회의장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니었던가.